십자가의 성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2009. 12. 13. 오후 11: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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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민수기 24,2-17;마태오 21,23-27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눈을 감고 들었을 때와 눈을 뜨고 들었을 때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듣기만을 강조하는 음악이기에 아무래도 눈을 감았을 때가 오히려 집중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잘 들리게 되는데요. 아랑훼즈 협주곡이란 기타와 오케스트라 협주곡이 있습니다. 예전 주말의 명화 시그널로도 유명했습니다. “따라란~” 그런데 이를 작곡한 호아킨 로드리고란 사람은 시각장애자입니다. 그런데도 점자를 통해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는데요. 이 사람에게 누군가 다가가 인터뷰를 했답니다. ‘로드리고 씨, 지금이라도 눈을 뜰 수 있는 개안수술을 받을 의향이 있으십니까?’ 하지만 그는 참된 음악을 위해 거절하고 마는데요. 물론 그도 세상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기에 오히려 보는 것의 혼란함보다 오히려 듣는 것에 치중하는 삶을 택하는데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가요, 가르멜의 산길, 완덕의 길을 펴낸 신비가인데요. 그는 여러 감각에서 탈출하여 참된 어둔 밤을 통해 믿음의 빛에 의존하길 바랬습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비신자일 때는 안 보이고 무시하던 것들이 신앙인이 되면서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을 하고 있는 자신의 죄가 보여서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기가 있어야 참된 생활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참된 나를 보게 하는데요. 복음에서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는 질문에 “저희끼리 하늘에서 왔다 하자니 그를 왜 안 믿었느냐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온거라 하자니 군중이 두려워 그냥 모르겠다.” 로 답합니다. 즉 머리를 굴려보는 그런 응답의 기도는 결국 오히려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로드리고가 음악이라는 한 곳에 매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끊고 청력에만 의존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여러 군더더기를 정리해 나갈 때 참된 영적 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데요. 그럼 여러분은 무엇부터 정리해 나가시겠습니까? 다 붙잡고 갈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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