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요한1서 2,12-17; 루카 2,36-40
‘ 사계’ 라는 교향곡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세속 칸타타 중에 또 하나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 제목은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라는 노래입니다. 세상 것에 맛들이며, 그것에 취해있을 때가 참으로 많은 우리입니다. 그것이 주는 달콤함이 계속 그 맛을 찾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맛을 보지만 그 끝 무렵엔, 뭔가 모를 허전함이 다가오는 이유는 무얼까요?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한 1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을 오늘도 살아가지만 느껴야 할 것이 있다면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난 그저 세상을 잠시 빌려 살 뿐이고, 지금 위치에 있는 자리도 언젠가는 내줘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삶에 영원한 내 것이 없다는 말에 어떤 분은 견디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당신은 우리를 챙겨주십니다. 1독서에 여러 번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그분을 압니다. 그 지식은, 내가 힘겹게 공부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먼저 그분이 나를 불러주셨고 일깨워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껏 버텨내고 있잖습니까? 복음에 나오는 한나는 남편과는 겨우 칠 년만 살고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습니다. 그러면 그녀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우리 각자도 가끔 홀로일 때가 있습니다. 괴로움이 불처럼 다가올 때 힘들다며 세상을 등질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참여하지만 초연하게 참여할 때,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생겨납니다. 그럴 때 그 무엇이 닥쳐도 이길 힘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살지만 그 속에서 만족을 얻기보다는 세상의 주인의 뜻을 헤아려 갈 때, 그분께서 주시는 참 평화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고 버틸 힘도 생겨날 것입니다. 나를 일으켜주고 있는 근원적인 힘이 무언지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