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주간 목요일. 사무엘 상 4,1-11;마르코 1,40-45
예전 한국영화 중에 박신양 주연의 ‘달마야 놀자’ 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주인공 박신양과 조직원들은 큰 사고를 치고 잠시 절로 숨어듭니다. 당연히 그 곳 스님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지요. 빨리 나가주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합니다. 스님들은 게임을 해서 조직원들이 게임에서 지면, 사찰을 나간다는 확답을 받아냅니다. 그래서 족구게임, 물 속에서 숨 참기 등을 합니다. 그러다 주지 스님이 낸 마지막 게임이 남는데요. 그건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콩쥐팥쥐에 나오는 두꺼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물을 길어다 부어보지만 다 허당입니다. 그러다 화가 난 조직원은 항아리를 들어다가 연못에 빠뜨리고서 둥둥 떠 다니는 항아리를 보면서 “이러면 채워졌지 않습니까?” 하니까 주지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그들은 계속 절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는데요. 과연 여러분의 신앙의 그릇은 어떠하십니까?
오늘 복음에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 합니다. 과연 입이 가벼워서 그랬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분에 넘치는 큰 은총을 받았기에, 자신의 그릇을 넘어선 사랑을 받았기에, 퍼뜨리고 쏟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요. 주의하라는 주님의 함구령도, 그들의 작은 그릇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궤만 믿고 싸우다가 철저하게 패한 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주님의 궤가 빼앗기게 되는데요. 오늘 독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다음 장면에는 하느님의 궤 때문에 그 곳 백성들이 종기가 나고 온갖 죽음을 당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이방인의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이라고 가져가 보지만 그것을 받을 만한, 유지할 만한 그릇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그릇은 어느 정도입니까? 작고, 깨지고, 흠집 나있고 그렇다고 여기십니까? 그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영화장면처럼 주님께 자신을 푹 잠겨보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 안에서 사는 내가 될 때, 흠집 난 것마저 덮어질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