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 목요일

2010. 1. 14. 오후 4: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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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주간 목요일. 사무엘 상 4,1-11;마르코 1,40-45

  예전 한국영화 중에 박신양 주연의 달마야 놀자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주인공 박신양과 조직원들은 큰 사고를 치고 잠시 절로 숨어듭니다. 당연히 그 곳 스님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지요. 빨리 나가주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합니다. 스님들은 게임을 해서 조직원들이 게임에서 지면, 사찰을 나간다는 확답을 받아냅니다. 그래서 족구게임, 물 속에서 숨 참기 등을 합니다. 그러다 주지 스님이 낸 마지막 게임이 남는데요. 그건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콩쥐팥쥐에 나오는 두꺼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물을 길어다 부어보지만 다 허당입니다. 그러다 화가 난 조직원은 항아리를 들어다가 연못에 빠뜨리고서 둥둥 떠 다니는 항아리를 보면서 이러면 채워졌지 않습니까?” 하니까 주지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그들은 계속 절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는데요. 과연 여러분의 신앙의 그릇은 어떠하십니까?

  오늘 복음에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 합니다. 과연 입이 가벼워서 그랬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분에 넘치는 큰 은총을 받았기에, 자신의 그릇을 넘어선 사랑을 받았기에, 퍼뜨리고 쏟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요. 주의하라는 주님의 함구령도, 그들의 작은 그릇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궤만 믿고 싸우다가 철저하게 패한 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주님의 궤가 빼앗기게 되는데요. 오늘 독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다음 장면에는 하느님의 궤 때문에 그 곳 백성들이 종기가 나고 온갖 죽음을 당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이방인의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이라고 가져가 보지만 그것을 받을 만한, 유지할 만한 그릇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그릇은 어느 정도입니까? 작고, 깨지고, 흠집 나있고 그렇다고 여기십니까? 그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영화장면처럼 주님께 자신을 푹 잠겨보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 안에서 사는 내가 될 때, 흠집 난 것마저 덮어질테니 말입니다.

댓글 1

  • 2010년 1월 14일 오후 8:42

    나보다 ~ 더 ~ 날 사랑하신! 나의 주 나의 하느님 ♩♬날 빚으신 그날부터 내 곁에 계시 주님을 ~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