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금요일..사무엘 상 24,3-21; 마르코 3,13-19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삽니다. 코흘리개 시절 만났던 친구들부터 현재 옆에 있는 이웃들까지 참 그동안 많이도 만났습니다. 휴대폰만 꺼내봐도 전화부에 기록된 인원이 몇 백명은 되는데요. 그래서 여쭙겠습니다. 과연 휴대폰에 내장된 그 사람들과 친하십니까? 가깝게 언제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그런 관계들입니까?
오늘 독서의 사울은 다윗을 재발견합니다. 그동안 괴소문에 시달렸던 사울인지라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 있던 상태였는데 다윗의 말을 들으면서 오해가 씻겨나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라면서 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하면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매번 만나고 살았는데,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살았음을 발견합니다. 이렇듯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라 할 수 없고 그저 마주침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만남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무던히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도에 따라 마치 자석처럼 사람이 끌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냄새를 맡는다.” 고요. 주님이 제자를 부르셨지만 제자들 나름대로 그동안 만날 각자의 준비를 하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서로의 준비된 만남은 자신을 가꾸는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들에게 무엇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답은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