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일미사. 여호수아 5,9-12;고린토2서 5,17-21;루카 15,1-32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일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복음 잘 들으셨습니까? 그럼 얼마나 잘 이해하셨는지에 대하여 지금부터 퀴즈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자~ 정신차리시고요.. 문제 나갑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이야기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 둘째 아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느꼈던 최초의 때는 언제일까요?” 급작스런 퀴즈에 놀라실까봐 4지선다 보기 준비했습니다. ① 아버지 품에 안길 때 ②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에 나오는 해리처럼 갈비 한 짝을 신나게 뜯고 있을 때 ③ 돌아온 자신을 바라보며 형이 질투를 내고 있음을 알았을 때 ④ 돼지가 먹는 열매 꼬투리를 먹으며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요..이럴 때 답은 마지막이 답이지요. 왜냐하면 앞에 나온 그 많은 보기가 생각이 잘 안 나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답은 ④ 돼지가 먹는 열매 꼬투리를 먹으며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입니다. 물론 아버지 품에 안길 때가 답이라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지저분한 돼지를 치면서 진정 내가 돌아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퍼뜩 알았을 때, 그 때가 오히려 구원받음의 최초의 순간이 아닐까요?
우리의 신앙은 구원받음을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교리 신학을 압축하여 만든 문답식 교리서 [천주교 요리]에 보면 제일 첫 문항이 이렇게 나옵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기 위해 세상에 났는가?’ 에 대한 물음에 답은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났다’ 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신앙이 하느님을 알고 자기 영혼을 구하는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저 ‘마음에 평안’ 만을 위해 교회에 온 것처럼 알고들 있는데요. 하지만 어떻하지요? 마음의 평안만을 바라고 신앙을 찾다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데요. 그 한계란 이 신앙이 그저 무사태평 안일한 평안과는 거리가 있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활동을 한다고 했지만, 하느님이 진정 누군지도 잘 모르고 해왔다는 점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도 답답하다고 느꼈던 것 아닙니까?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아니~ 무슨 화해를 해야 한다고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것일까요?
전 개인적으로 2년간 특수 사목직을 행해왔습니다. 방송국에서 밤10시부터 2년간 꼬박 라디오 진행을 하였습니다. 처음엔 재미있었습니다. 젊을 땐 다들 그렇잖습니까? 평범한 사람보다는 특수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한번 해볼까?” 하고요. 하지만 곧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거듭되면서 저의 정체성에 대해 자꾸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요. 제가 만약 발가 벗기워지면 남아있어야 할 것이라고는 “저는 그리스도를 압니다.” 오직 이거 하나여야 하는데.. 자꾸만 cd를 들으며 가요, 팝의 동향을 파악하고 차트를 들여다 보고있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며 전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미를 찾다가 원래의 고유성인 사제의 모습을 잃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다시 돌아오게 된 방배동 본당의 이 생활. 전 너무나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마치 둘째 아들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도 평상시의 삶보다는 보이지 않는 로망을 찾아 오늘도 헤매이실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큰 아들은 푸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고요. 여러분께서는 평소 삶의 고마움을 알아차리십니까? 매번 똑같게만 움직이는 것 같은 이 삶을 감사하게 여긴 적이 있으십니까? 별 맛이 없어 보이는 밥의 고마움을 깨달을 때야말로, 건강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내 곁에 계신 하느님의 참 존재를 알 때.. 그때 주님과 참 화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