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 토요일

2010. 3. 19. 오후 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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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간 토요일. 예레미아 11,18-20; 요한 7,40-53

 요 맘 때 쯤 되면,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냐고요? 사순절 이 복음이 또 다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로들 이런 증언을 합니다.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이시다. 저분은 메시아이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나서서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린 또 다시 멈춰서서 주저하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요? 왜 그들처럼 증언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을까요? 틀릴까봐 그렇습니까? 남들의 눈이 무섭습니까?

우리가 믿는 주님의 모습, 그리스도의 상은 항상 정지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점점 깊어지는 이유도 될 수 있고요, 내가 깨닫는 정도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이 이야기 하는 정도에 따라 나도 무릎을 탁치며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걸 나 혼자, 나의 이성만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알려주시기에 내가 깨닫고 알아차립니다. 나의 힘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 마음을 울려주실 때 그 때야말로 힘 있는 증언이 나오는데요.

 예전 신학생 시절에 복음을 낭독하고 나눔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참으로 묵상을 잘하고 발표도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들어보니 예전의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즉 그는 예전의 주님 상에서 머물고, 그 좋았던 것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전의 느낌이 좋아 머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그러다보면 우린 살아있는 주님이 아니라 죽어있는 주님을 모시고 마는 셈인데요. 오늘 율법학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을 연구해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물론 주님은 베들레헴 출신입니다만 그들은 그렇게만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있는 주님은 내게 오십니다. 나는 뭐라고 증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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