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열왕기 상 18,41-46;마태오 5,20ㄴ-26
가끔 면담을 하다보면 찾아오신 내담자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 문제에 대해 제가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그만..” 하면서 자신을 조금이나마 감싸는 듯한 말씀을 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뭐 본인 말씀처럼 잘 알고 계신 분이시겠지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가지곤 합니다. ‘모범답안대로 살려는 사람들’ 이라고요.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가 추락당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원래 모습이 아닌, 이상적인 나(我)의 모습이 진짜인양 여기는 분들을 보는데요. 그러다보면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그런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제 개인적으로 율법학자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문자(文字)에 가로막혀 사는 사람’ 이라고요. 아는 것은 많지만, 그저 배운 대로만 몰두하기에 ‘현실의 나’ 라는 사람과, 원하는 이상 사이에 있어서 갭(gap)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떤 사람이 되는 지 아십니까? 괴물이 됩니다. 자신과 남에게 모범 답안만을 강조하는 사람이 되기에, 자신도 남도 갇히게 되는데요.
그럼 우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복음을 읽으면서도,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문자에 가로막혀 살지 않는 초월적인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초월적인 사람입니까? 우선 단순하게 본인이 해야 할 행동과 삶이 일치가 되면 됩니다. ‘해야 하는데...’ 하면서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그것을 하십시오. 그리고나서 과연 주님이 바라시는 삶이 어떤 것인가 헤아려 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경구절을 넘어서는 혜안(慧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합니까? 나라는 부분이... 전체라는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한쪽에만 사로잡혀 있지 마십시오. 그분은 율법이라는 정신 너머의 참됨을 만나길 바라십니다. 우린 그것을 만나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