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화요일

2010. 6. 15. 오후 1: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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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간 화요일. 열왕기 상 21,17-29;마태오 5,43-48

여러분의 눈은 잘 보이십니까? 저는 다행히 안경을 쓰지 않아도 살기에 별 무리없는 감사한 삶을 살고 있지만 땀이 흐르는 이 계절이 다가오면 안경 쓰시는 분들은 정말 고역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이 다가오기에 잘 보고 싶어서 또는 미용 때문에라도 라식, 라색 등의 수술을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것도 보이십니까? 내가 지금 어디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지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면서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 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축구의 때가 오면 모든 삶의 기준 시간표가 축구에 가 있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골프에 빠져 있는 분들은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주일이면 필드에 나가기에 주일미사를 거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 때문에 고해성사를 보지만 고해의 죄는 계속 같은 것을 얘기하게 되고 거기에 사로잡히다 보면 나중에는 죄가 죄인 것인지도 모르고 넘어가게 되는데요.

오늘 아합왕은 엘리야의 말을 듣고 이런 자세가 됩니다. “제 몸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그래도 그는 자기 것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았기에 회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실망은 하겠지만 진실로 그게 사는 길이었는데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요. 단순히 그래야 하니까, 시키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으로 똘똘 뭉쳐 있는 시각을 버릴 때, 이웃을 제대로 보고 자신도 참답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닌, 완전한 사람은 이처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요.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차라리 눈먼 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 고요. 지금 내가 무엇으로 사로잡혀 있는 지 보이십니까? 그걸 봐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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