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1 주간 수요일. 열왕기 하 2,1.6-14;마태오 6,1-18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한번 하는 신앙생활, 잘 하고 싶어합니다. 참답게, 깨끗하게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수반되어야 할까요? 예전 국사책에서 배운 인물들 가운데 대각국사 의천과 더불어 고려 때 불교를 중흥기로 이끌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보조국사 지눌인데요. 이 분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문득 깨치면 부처와 같다지만/ 무량 겁에 찌든 버릇 그대로 남아있네,/ 바람은 자도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드러나도 망상은 오히려 남아있네’ 라고요.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자아는 자꾸 드러나려 하기에 자꾸 덜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오늘 복음 말씀도 이와 같게 여겨집니다.
오늘의 말씀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말씀하시면서 같은 말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보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란 부분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고 하고 또 이에 취해 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내가 왕년에 말야...이러이런 일을 했는데..’ 하면서 마치 예전에 받았던 훈장을 늘어놓기에 바쁜 경우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받을 상을 받은’ 상태를 즐기는 차원에서 떠나 거기에서 벗어나는 삶이 될 때 주님이 갚아주심을 받는, 초월의 상태로 넘어갈 수 있는데요. 독서에서 제자인 엘리사는 떠나는 엘리야와 마지막 하직 인사에서, 자신이 받고 싶은 은총을 이야기 합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주십시오.” 물론 인간적으로 받고 싶고, 이루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린 더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는 지 바라보는 삶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차츰 변화해 가는 삶으로 옮겨갈 수 있는데요.
재미있게도 어린이들은 신부님들이 미사와 고해성사만 준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신부님들은 강론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단다.’ 라고 이야기 하면 ‘에이~ 그런 건 예전에 써놓은 거 보면 되잖아요’ 하고 말하는 경우를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사제들도 예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열심히 살다보면 변화하고 계속 거듭나는 삶을 경험하곤 합니다. 예전의 상태에 머물러 이미 받을 상을 받고 만족하는 삶이 아닌, 주님이 갚아주심을 만나게 될 때, 우린 더 기쁠텐데요. 그 출발은 자아를 버리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고 싶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