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수요일

2010. 6. 2. 오전 3: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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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9주간 수요일. 디모테도2서 1,1-12;마르코 12,18-27

오늘 복음만 읽으면 제가 부르심을 처음 느꼈던 예전에 당시가 떠오릅니다. 그 때 제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나에게 있어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젠 남이 말해 주는 하느님도 질렸고, 남이 고백한 하느님도 왠지 와 닿지 않는 상태였기에 제가 직접 알게 된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에 관심이 온통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게 된 복음의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사악의 하느님이라면, 이제 현재를 살고 있는 ‘나, 희태’의 하느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던 때가 떠오르는데요. 그랬던 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땐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 에 관심이 가 있었지만 이젠 하느님을 향해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젖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안 그래도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고요. 부르심에 따라사는 것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논어의 옹야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염구라는 사람이 고백합니다. ‘선생님의 도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힘에 미치지 못합니다.’ 라면서 따르지 못함을 힘들어 하는데요.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힘이 미치지 못한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기 쉽지만 너는 지금 획을 긋고 있다’ 고요. 한자인 ‘그을 획(畫)’자를 쓰려면 12획이나 그어야 하는 글자입니다.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싫지는 않지만 자신의 역부족의 보일 때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글자 획을 긋다가 말면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지금 관두면 이제까지 노력도 보람도 전부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오히려 획을 긋고 있다고 느낄 때, 그 과정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데요. 어쩌면 신앙의 시간도 획을 긋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다보면서 더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살필 때 지금의 어려움도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나 자신의 하느님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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