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목요일. 집회서 48,1-14; 마태오 6,7-15
어느 수도원에 조그마한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형제 하나의 행실이 문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사님들은 이런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쫓아내야 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등등 별별 말이 다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서, 흥미롭게도 수도원 원장 신부님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사님들은 원장신부님께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은 원장 신부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뭔가 만족스러운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하고요. 그 말을 듣자 원장 신부님은 어디론가 가서 자루에 흙을 퍼 담더니 자루를 등에 진 채, 공동체 회원들이 있는 가운데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루 밑엔 구멍이 나 있어서 흙은 밑으로 줄줄 새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흙이 줄줄 새고 있는데요? 안 보이세요?” 이렇게 누군가 이야기 하자 원장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는 와중에는 흙이 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야 알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의 행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그런 부분은 다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서로의 뒤를 봐주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라고요.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십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요. 용서, 사랑, 이것은 자신의 힘만으로 되진 않습니다. 독서에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동안 어떤 통지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고 되어 있습니다. 그가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하면서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 댄 동산같이 언제나 풍요로울 수 있는 젖줄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수도원장님의 헤아림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원의 앞날을 보자면 그런 사람은 마치 해충같이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사랑의 눈으로 봐 준다면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 그 사람 안에 힘이 생기면서 자연 치유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곁에 그런 사람이 혹시 있지 않습니까? 그럼 얼마나 여겨봐주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