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주간 목요일. 마태 10,7-15
어떤 수도원의 수사님이 나이가 지긋하신 노 수사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밤에 혼자 나가면 왜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러자 노 수사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네가 아직도 이 세상의 삶을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네”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낭패를 볼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약하게 보일까봐, 또 실수를 할까봐, 삶에 대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기분 좋게만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등을 통하여 아무 걱정 없이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작 실생활은 그러하질 못하고 있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앞에서 이야기 한 수사님의 경우처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며, 어두운 것들로부터 나오는 위협에 굴복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즉 적대적인 사람들의 위협은 동물의 왕국처럼 언제 내가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합니다. 그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내 영혼 안에는 어둠이 찾아들어 우울하고 침울하게 되어 내가 설 땅이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두려움의 원천은 아직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하느님의 삶보다 중요시 여긴다는 표시입니다. 우리의 삶은 성공적인 삶, 좋은 평판, 건강, 안전함 등 이런 것들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통하여 이뤄진다는 믿음은 점차 약해지고 맙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두려움이 커지게 되면 ‘복음은 복음 말씀일 뿐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 라는 식으로 이원화되어 결국 내 삶은 분열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느님 체험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다른 걱정이나 두려움마저 이기게 해주는 힘을 맞이할 수 있는데요.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자유로운 삶을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맞이하고 싶어하는 평화는 주님의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어둠의 세력이 극복된 평화입니다. 그저 잠시 차분한 상태의 평화를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살필 때 하느님 나라는 진정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