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에제키엘 9,1-22;마태오 18,15-20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이 왜 여인들과 가까이 지냈을까? 그녀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셨을까? 하고요.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제 독신서원을 하고 홀로 잘 서야 하는 제 입장에서도 본당에서 많은 여성들을 만나면서 어떤 것이 참된 관계일까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라고요. 사랑이란 이유로 집착을 하고 사랑이 거절당했을 때 애정이 애증이 되는 현장을 바라봅니다. 갑자기 틱닛한 스님의 이야기가 떠오르는데요. 어떤 비구니 스님이 그에게 물었답니다. 어떤 스님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데 문제는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틱닛한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선 그 욕구가 어디서 나오는 지 바라보라’ 고요. 왜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가? 라고요. 어떤 이와 가까이 지내고 싶을 때 내가 기대하는 만큼 내게 마음을 열고 안 열고는 그 사람의 결정이기에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나의 권리입니다. 나의 자비가 참으로 순수하고 크면, 먼저 자신이 바뀌게 되고, 상대 또한 자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 사랑은 행복을 가져옵니다. 사랑을 키우는 것은 수행이지만 수치와 질투는 수행이 아니니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며 별로 서로 만나는 교류는 없었지만 참 열렬했던 성 프란치스코와 성 글라라의 사랑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활동적인 프란치스코와 달리 글라라 성녀는 그야말로 엄격한 봉쇄 속에서 산 사람입니다. 그런 글라라를 보고 성인 연구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성녀의 영혼은 성 프란치스코가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요 고향집이었다.’ 고요. 오늘날의 사제들은 여러 특별한 갈등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제들이 완전히 일에 파묻혀 사는가 하면 또 다른 사제들은 그 모든 것을 떠나 숨은 생활과 고독에로 도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제끼리 잘 지내고 서로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부족한 점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때 관상봉쇄수도원에 있는 수녀님들의 힘은 대단합니다. 우선 그녀들은 사제의 힘든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마냥 떠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신심깊은 기도와 묵상 중에 하느님께 전달하고 경건한 바람과 다정하고 섬세한 느낌으로 동감하는 ‘내적 나눔’으로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수녀님들의 모습은 성녀 글라라의 특별하고도 독특한 소명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소명을 사는 수녀님들의 마음은, 사제 생활의 특성이며 생길 수 밖에 없는 거룩한 비밀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성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러한 비밀을 분석하거나 설명을 요구하지도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비록 그 순간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감싸안고 숨겨줍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프란치스코도 예수님도 거룩한 여인들과 잘 지낸 모양인데요..
여기 계신 많은 자매님들은 어떠십니까? 글라라의 모습처럼 남편들에게 잘 대해주고 계십니까? 떠벌리거나 분석하거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포근한 안식처요, 고향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메말라 가는 요즘, 우리에겐 이런 사랑이 절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