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일미사. 코헬렛 1,2-23;콜로새서 3,1-11;루카 12,13-21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옛날 이야기 한편 들려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사막에서 기도를 하던 한 수도사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궁궐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모습이 워낙 성인의 모습을 갖고 있었기에 궁궐 경비병도 그 기에 눌려 어떻게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임금 앞에 이르게 되자 왕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원하는 게 뭐요?” 그러자 그 수도사는 “저는 이 여관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여기는 여관이 아니라 내 왕궁이요.” 하자 수도자는 왕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럼...왕께서 사시기 전에 이 집은 누구의 것이었습니까?” “그야 돌아가신 선왕의 것이었소.” “그러면 그 전에는 누가 살았습니까?” “당연히 우리 할아버지 아니겠소? 그분도 돌아가셨지요.” “그럼 이 왕궁도 사람들이 머물다 가기는 마찬가지군요. 그래도 여기가 여관이 아닙니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역 대합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합실에 머물다가 기차시간이 되면 모두 떠나야하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현재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양,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제로 부르심을 받고 살아간 지 6년 째 됩니다. 긴 시간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느끼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고 말하지만 결국 비슷한 사람이란 것을 말입니다. 신부님들은 사순, 대림 때가 다가오면 참 바쁩니다. 우리 본당도 그렇지만 다른 본당에서도 며칠씩 하는 판공성사를 마치 농번기 품앗이 하듯이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강남권을 비롯하여 서울 시내 강동,강서,강북, 다니지 않은 본당이 없을 정도로 많은 본당에 가서 판공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서로의 삶이 다르면 죄도 다를 줄 알았는데, 고해하는 죄를 듣고 보니 놀랍게도 모두 비슷한 유형의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동네마다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 하지만, 실은 서로 차등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사람의 본성은 같구나’ 하고요. 저에게 고해한 사람 중에 높은 지위와 학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사실 십계명이 나온 지도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하지만 그 조항들이 지금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면 참 놀라운데요. 거기다가 사람들 내부엔 오늘 말씀처럼 욕심이 늘 살아있음을 우린 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고요. 탐욕의 모습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모세 때 있었던 만나의 기적입니다. 워낙 배고픈 나머지 하느님은 만나를 내려주십니다만 그것을 모으지는 말라 하십니다. 그러나 자루에다가 모은 이들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구더기가 생기고 거기에 고약한 냄새가 났잖습니까?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는 부분이 깊게 들어왔습니다. ‘일용할 양식’ 이 과연 뭡니까? 글자대로 하루에 먹을 수 양식에 감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린 자꾸만 그 다음 날을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재에 머물러 감사하는 마음을 잊게 되었습니다.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 내가 보입니다. 그런 모습은 1독서의 말대로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처럼 헛된 것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리 돈을 모으고 물건을 사고 있습니까? 결국 내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내 마음을 채우려고 물건을 사고, 내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려고 오늘도 여기 나오신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결코 사물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잠시 잡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줄 수 없다면 결국 난 거기에 소유당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뭔가 소중히 여기고 싶다면 오므린 손바닥에 물을 담듯이 그렇게 쥐어야 합니다. 꽉 쥐어보십시오. 그러면 없어질 겁니다. 당신 것으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더러워질 것입니다. 자유롭게 놔 주십시오. 그러면 영원히 당신 것이 될 것입니다. 현세를 살면서 언제라도 아버지 품에 안기는 연습을 할 때, 그 시간이 정말 오더라도 허둥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