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수요일

2010. 8. 22. 오후 2: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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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0주간 수요일. 올리베따노 수녀원에서 강론...

찬미 예수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제가 매년 찾아옴에도 반가이 맞이해주시는 수녀님들께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도를 하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무슨 1년짜리 적금타듯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무얼까? 하고요. 그러다 즉각적으로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목을 한답시고 몸부림치며 뒹굴거리는 시간속에 한번씩 잠겨보는 올리베따노라는 이 ‘선녀탕’이 나를 깨어나게 해주고 있다고요. (웃으신다는 건 다시말해 본인들이 선녀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면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머리모양 때문일 것입니다. 안그래도 방배동 본당으로 옮긴지 사흘만에 팬레터 하나를 받았습니다. ‘신부님 머리 때문에 미사 집중이 안되요’ 사실 저에겐 교우들에게 말하지 않는 신체상의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제 머리가 직모인데다가 마구 뻗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웨이브, 파마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만 지금의 제 모습이 제일 단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도 제 이름을 대화중에 올리시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자 하시는데요. 그중 있었던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30년간 영성담당이시며 교수이며 학장까지 지내셨던 주임신부님께서 신학교에서 가서 점심을 드시게 되었습니다. 그 식탁에는 현재 학장신부님과 업무차 오신 지금은 춘천 교구장이신 김운회 주교님 이렇게 3분의 자리가 연출되었습니다. 식사를 하시던 도중 갑자기 학장신부님께서 제 이름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 곽신부 머리가 그게 뭡니까? 좀 자르라고 하세요..” 그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제 후배들도 저처럼 살까봐 학장으로서 걱정이 되셨겠지요..그러자 주임신부님은 이렇게 대응을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신학생이랑 사는게 아니라 신부랑 사는거야!!” 개인적으로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분위기는 싸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간 이를 지켜보던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데말야 ...내 비서는 빡빡이야” 물론 주임신부님도 저의 용모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이 내색 하나 없이 저와 살아주고 계신 연유는 무엇일까? 헤아려보았습니다. 아마도 본인의 주관에서 사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자 하는 마음은 아닐까 하였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 양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사제 생활 몇 년 하면서 이런게 보입니다. 만나고 있는 교우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헤아려주기 보다는 이젠 나의 살길을 찾는 그런 모습들을 말입니다. 남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무엇으로 인해 변질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인에게는 자기 마음을 따로 지니지 않고 단지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 고요.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하느님은 착한 이에게나 악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밭이 있지만 무언가를 심고 잘 자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초보농부들은 과연 잘 심겨졌나? 의심스러워 다시금 뽑아드는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참된 농부는 이런다죠? ‘농부는 땅을 믿는다’ 고요. 이런 신뢰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말없는 눈길과 기다림이 열매를 맺게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번 찍힌 사람은 다시금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달마스님의 법문 <관심론> 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 마음이여 알 수 가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조차 없구나’ 고요.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뒤틀린 마음에 사로잡히다보면 병들어 있는 자신만 확인할 뿐인데요.

우린 기억합니다.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까지 차려주시는 주님을 말입니다. 정말 속 좋은 주님의 근원적인 힘은 어디에 가 닿아있을까요? 한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당신의 사랑법을 쳐다보며 내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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