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목요일 고린토 1서 1,1-9; 마태오 24,42-51
여러분에게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 땐 어떻게 하십니까? 넋 놓고 앉아 계십니까? 아니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나?’ 하면서 한탄하십니까? 이럴 때 우리에겐 ‘보는 자리’ 가 중요한데요. 보는 자리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처럼 힘든 일이 생기실 때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판단이 쉬이 내려지지 않을 때당신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때마다 당신은 산에 가셨습니다. 그 산이란 장소는 기도하는 거처를 따로 마련해놓고 세상을 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보는 자리가 필요한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주님을 알고 나서 되돌아본다면 이거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이 예전보다 더 나아진 면은 없다고 하더라도, 나의 성격이 더 낫게 변화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뭔가 모를 풍요로움과 감사를 느끼는 내가 보입니다. 그것을 단박에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그 흐름의 세월이 이제껏 나를 만들어 준 바탕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 복음에서도 당신은 “깨어있어라” 하면서 말씀을 꺼내십니다. 사실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늙음이 없습니다. 물론 주름살은 생기고 몸의 무게는 예전같지 않을 수 있겠지만, 늘 깨어있기 때문에 세월이 비켜가기 때문입니다.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기에 고루하지 않고, 예전 것에 머물려는 어리석음을 탈피하려 합니다. 우린 이처럼 세월에 놀아나지 말고 때묻지 말아야 합니다.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처럼 ‘보는 자리’를 잘 가져야 합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종의 모습을 취하면서 생활 중에서 언뜻언뜻 들려주시는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생활을 해 나갈 때, ‘나는 당신과 닿아 있는 삶을 살고 있구나’ 하며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