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월요일

2010. 8. 29. 오후 11: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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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 주간 월요일. 코린토 1서 2,1-5;루카 4,16-30

인도라는 나라의 풍토와 문화에 대해 우린 잘 모르지만 현대 인도의 고전무용가로 유명한 사람 중에 수다 샨드란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무용의 절정기 시절에 그 세계와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족을 하고 돌아온 그녀는 무용계의 정상에 등극하게 됩니다. 거짓말 같게도 말이지요.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합니다. “춤추는데는 다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요.

오늘 독서에 복음을 전하려는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는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마태오 복음 10장에도 이런 말씀이 있지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알아서 이끌어 주신다는데 사람들은 무언가를 그렇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일을 그르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르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내가 너를 고쳐주었다.’ 고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널 살렸다.” 하십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 속에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중국 경전에 보면 ‘성인(聖人)은 부자현(不自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성인은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사야의 예언서를 말씀하시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하신 것은 당신의 삶 자체가 말씀을 드높이며, 자신이 말씀에 녹아드는 삶을 사신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기대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일을 하기에 앞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할까?’ 를 먼저 염두하기에 앞서서 ‘그분이 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까?’를 먼저 묵상하신다면 그분이 진정 원하시는 방향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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