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 주간 수요일 코린토1서 3,1-9; 루카 4,38-44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큰 기쁨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린 어떤 행동을 보입니까? 당연히 얼굴은 표정에 드러나게 마련이고 웃음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간직한 것이 나의 것보다 크게 되면 이를 남에게 보이고 전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처럼 기쁨은 남에게 전할 때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베드로의 장모가 심한 열병에 누워 있었는데 그녀가 주님의 치유를 받고 일어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가 단지 치유를 받고 바로 주님과 제자들에게 시중을 들면서 자신의 기쁨을 헌신하는 장면으로 묘사된 이유는 무슨 이유겠습니까? 참된 기쁨은 자신 홀로만의 것으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남에게 그것을 퍼뜨릴 때 가능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기쁨은 밖으로 퍼질 때, 남에게 그것을 나눌 때 진정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진실된 기쁜 소식을 간직하신 예수님 또한 이 복된 소식이 너무나 벅찬 것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이 목말라 하고 그토록 찾은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참된 기쁨으로 인해 자신의 갈증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충만된 상태는 그저 인간 개인의 만족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족되고 기쁨으로 가득 찬 그 사람을 보면서 상대방인 나도 또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우리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복음을 들은 우리들은 1독서의 말씀처럼 살고 있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열매를 키우는 나 자신도 기분이 좋지만 그 열매를 보고 있는 남도 탐스러운 상태를 보고 즐깁니다. 이 모든 게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데요.
9월은 모든 열매를 추수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때에 올해도 내 인생의 열매를 얼마만큼 키우셨고 또 그것을 얼마나 남에게 전해주셨나 살펴보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