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학자 기념일.
여러분과 제가 지낸 지 벌써 9개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저의 모습을 항상 좋게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이 머리 모양일 것입니다. 안 그래도 방배동 본당으로 옮긴 지 사흘만에 팬레터 하나를 받았습니다. ‘신부님 머리 때문에 미사 집중이 안되요.’ 사실 저에겐 교우들에게 말하지 않는 신체상의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제 머리가 직모인데다가 마구 뻗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웨이브, 파마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만 지금의 제 모습이 제일 단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도 제 이름을 대화중에 올리시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자 하시는데요.
그중 있었던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30년간 영성담당이시며 교수이며 학장까지 지내셨던 예전 주임신부님께서 신학교에서 가서 점심을 드시게 되었습니다. 그 식탁에는 현재 학장신부님과 업무차 오신 예전 방배동 본당 1대 주임신부님이시며 지금은 춘천 교구장이신 김운회 주교님. 이렇게 3분의 자리가 연출되었습니다. 식사를 하시던 도중 갑자기 학장신부님께서 제 이름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 곽 신부 머리가 그게 뭡니까? 좀 자르라고 하세요..” 그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제 후배들도 저처럼 살까봐 학장으로서 걱정이 되셨겠지요..그러자 주임신부님은 이렇게 대응을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신학생이랑 사는 게 아니라 신부랑 사는거야!!” 개인적으로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분위기는 싸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간 이를 지켜보던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데말야...내 비서는 빡빡이야”... 물론 주임신부님도 저의 용모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이 내색 하나 없이 저와 살아주고 계신 연유는 무엇일까? 헤아려보았습니다. 아마도 본인의 주관에서 사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자 하는 마음은 아닐까 하였는데요.
오늘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학자 기념일입니다. 베드로부터 지금까지 교황님 중에 교황 앞에 ‘Magus, 대(大), 위대한’ 이란 존칭이 붙는 교황님은 440년 경에 계셨던 레오 교황님과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604년에 돌아가신 그레고리오 교황님 두 분 밖에 안 계실 정도로 대단한 분이신데요. 특히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선출될 때 이제까지 유례없는 만장일치로 선출되신 분이십니다. 이론보다는 실천적이시면서 세상에 밝으시고,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 중의 종’ 이라 표현하실 정도로 영성이 대단하셨습니다. 과연 사람들에게 이토록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아무래도 업적 지향보다는, 그분의 삶에서 풍겨 나오는 품위가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고 보다듬어 주는 분이었기 때문아니겠습니까?
오늘 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잘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을 비판하고 깎아 내리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얻는 것이 있었습니까? 사랑어린 비평이 아닌 심판은 그저 남을 해치는 도구에 불과한데요...
우리는 사람과 함께 어우려져 삽니다. 이웃들과 동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들마다 사정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 사람 안에는 많은 사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연들을 얼마나 헤아려 주고 계십니까? 우린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