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미사

2010. 9. 4. 오후 12: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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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일미사. 지혜서 9,13-18; 필레몬 9,10-17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일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잠시 동안만 제 말씀을 따라 주시겠습니까? 한번 눈을 감아주십시오. 눈 감는다고 여러분 지갑에 손대는 것 아니니까 걱정하시지 마시고요. 눈을 감아보시고요. 지금은 성당에 와 계시지만 잠시 집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집에 계십니다. 집에서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그동안 사 모았던 많은 물품들이 있을 것입니다. 책도 있을 것이고, 주방기기도 있을 것이고, 멋진 옷, 가방도 있겠구요..컴퓨터 안의 많은 자료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사 모으고 얻었던 것들이기에 참 소중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부터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하나 먼지처럼 없어집니다. 여러분의 마음상태가 어떻습니까? 불편하십니까? 잡고 싶으십니까? ‘이러면 안돼~’ 하며 소리 지르고 싶으십니까?... 이제 눈을 떠 보십시오. 뭐 실제로 없어진 것은 없으니까 걱정 마시구요...

 유명한 중세의 성인 중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대전’을 쓴 이 성인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도 나오는데요. 이 성인의 머릿속 상태는 그야말로 백과사전이라 일컬을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예화를 말씀드리면 아퀴나스 성인 앞에 제자들을 쭉 앉혀놓고 이렇게 시켰답니다. ‘자~ 이제부터 내가 책을 써야 하니까..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듣고 받아 적어라.. 너는 신학, 너는 철학, 너는 성경, 너는 천문학 등을 잘 받아적어라’ 할 정도로 그의 상태는 '공통의 박사(Doctor Communis)'란 칭호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인이 죽기 3개월 전인, 1273년 12월 6일에 미사를 드리다가 주님의 모습을 보는 체험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여태껏 쓴 모든 것은 내가 본 것, 지금 나에게 계시된 이것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고 말하고 그날부터 절필선언을 하는데요. 인간적으로 보자면 그동안 저술하고 모은 것들, 참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기 컴퓨터 하드웨어만 날라가도 발을 동동 굴리는 것이 우리들이잖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주님을 만나면서 그동안의 자산을 지푸라기처럼 여기는데요.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와서 순간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누가 탑을 세우는데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 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들으면 ‘아~ 계산하면서 살라는 것이구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탑을 세우거나 전쟁을 할 때에도 계산을 먼저 하듯이 예수님을 따르려면 먼저 끝까지 따를 수 있는 지 성찰을 해봐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성찰의 선결조건은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고 하신 것이 바로 그 조건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나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는 말씀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고자 하신 말씀 이것입니다.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마저 시선을 뗄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참다운 것을 볼 줄 안다.’ 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오늘은 예비자 입교식이 있는 날입니다. 이분들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1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노력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는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먼저 자신의 것을 내려놓아야만 진정 하느님의 것이 보입니다. 살면서 그런 기회는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말씀만 해도 그렇잖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2독서의 바오로의 말씀처럼 자연스럽게 되길 원하십니다. “그대의 승낙없이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시는 당신께 우린 무엇을 내어드리면서 또 받으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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