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고통의 성모마리아기념일. 히브5,7-9; 요한 19,25-27
언뜻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내를 들여야 보면 나름의 고통에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고통의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고, 자신의 고통이 다른 누구의 고통보다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성모님이라 해서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예외이지는 않으셨는데요.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예전에 성모통고 축일이라고 불리었던 날입니다. 이날은 1668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세워진 축일로 어제 있었던 ‘십자가 현양축일’ 다음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가 성모님에게 있어 참으로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 되는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을 우리는 성모칠고라고 부릅니다. 첫째로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했을 때, 둘째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은 시므온이 당신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 셋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고 찾아 헤맬 때, 넷째 십자가를 진 예수님을 만나야 했을 때, 다섯째.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여섯째 십자가에서 예수의 주검을 내렸을 때와 일곱 번째 주님을 무덤에 묻어야 했을 때 겪은 고통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의 이러한 삶을 “정신적 순교” 라 칭하면서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으시는 어머니의 고통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축일을 제정하였는데요.
이처럼 성모님께서 받으신 고통으로 인해 당신은 우리 인간들이 생활 중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나?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힘겨운 고통과 버티며 살아야 할 때, 그 싸움이 외롭지 않음을 당신의 인내로써 알려주셨습니다. 만약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났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이 받으신 일곱 고통만큼 일곱 가지 낙이 있었으니 그것은 첫째. 가브리엘 천사와의 만남. 둘째. 엘리사벳을 방문함 셋째. 예수님의 탄생 넷째. 예수님의 공현사건 다섯째.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과 여섯째. 예수님의 부활, 일곱째, 성모님의 승천을 들 수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만으로 끝났다면 구속사업은 헛되었겠지만 부활로 말미암아 새 삶을 희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기다리는 속에서 참으로 인내해 나갈 때 성모님의 영광을 우리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