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월요일

2010. 9. 19. 오후 4: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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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5주간 월요일. 잠언 3,27-34; 루카 8,16-18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고 있는데요. 어찌 잘 쉬고 계십니까? 이런 쉬는 날은 개인적으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저희같은 성직자 수도자들도 친정집에 들르기는 하지만 거기에 목을 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한 이런 때가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피정같은 기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문득 오늘 말씀을 보다가 예전 제 과거가 생각이 났습니다. 제 얼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남들보다는 좀 늦게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부르심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에 대해 진정으로 기쁜 나날을 안고 살았는데요. 그러면서 이런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자. 불러주신 것에 보답하도록 말이다.’ 하면서요. 신학생들은 한 달에 한번씩 지정된 영성담당 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왔는 지 삶은 어찌 살고 있는지.. 하고요. 제가 한 달동안의 것을 쭈욱 말씀 드리니까 그 신부님은 이렇게 답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희태야...이제는 알았으니까 힘 좀빼고 사는 게 어때?” 하고요. ‘힘 좀 빼라?’ 순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열심히 사는 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나는 신학생이고 사제가 될 몸인데 이렇게 살면서 그런 바탕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사제는 만들어진 교육된 ‘사제자신’ 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자연스런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렇게 인위적으로 살다보면 어디선가 뻥 터지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오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아닌 척 하지만,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기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알 때가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내 삶과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자연스럽습니까?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밑에 두는 것이 부자연스럽듯이, 비록 발견한 나라는 사람이 부족하다 해도 이를 긍정할 때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가족, 친지들과 많은 시간 가지실텐데요.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각, 자연스럽게 표현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마음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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