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수요일. 갈라디아 2,1-14; 루카 11,1-4
우리가 다른 것은 잘 하지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를 참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내 안의 삶이 균형감이 깨지면서 갈라지는 모습이 발생합니다. 분명 우린 주님에게서 사랑을 배웠는데 우린 언젠가부터 왜 당신의 마음과 멀어지기 시작하였을까요?
오늘 독서에 바오로는 베드로가 위선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라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초기 교회인들이기에 이러한 과정은 필요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유대인법으로 살던 유대인들에게 다른 민족이란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도 어찌해야 좋을지 두렵고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방식대로 사는 게 중요한데요. 오늘 복음에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요청합니다. 뭔가를 가르쳐 달라는 말은, 다시 말해 자기가 가졌던 방법을 버리고 그 가르쳐준 방식대로 바꿔 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야 온전히 흡수하여 자신이 가져왔던 방향과 충돌없이 선생님의 방향대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을 주님에게서 배워놓고 또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내 영혼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드세웠기에 주님의 방법이 내 안에 침투하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인 것에 머물고만 맙니다. 마치 아픈 데 약을 발랐지만 약이 환부에 침투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의 이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선 누군가는 죽어야 할텐데요. 내 자존심을 죽일 것인지, 아니면 그를 계속 미워하여 내 인생 리스트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린 기도라는 것을 합니다. 많은 청원과 바람을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의 방법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한정된 시간은 지금도 흘러갑니다. 하지만 사랑해야 할 대상은 아직도 거기에 있는데요.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사랑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