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갈라티아 3,1-5; 루카 11,5-13
매일 하는 기도 중에 참 많이 하는 기도가 묵주기도입니다. 그런데 예전 1960년대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생기기 전의 전 세계의 미사전례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신부님들이 라틴어로 미사집전을 하였지만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이 그것을 알아 들으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묵주를 자연히 꺼내어 돌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비록 못 알아듣는 까막귀의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기도는 다 존중받았기에 그 할머니들의 신심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은 지극히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럼 현재 자국어로 거행하는 이 편한 미사 속에서 여러분의 신심이 그분들의 신심보다 더 우월하다고 하실 수 있는지요.
오늘은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매일미사 책에 잘 나온데로 1570년경 비오 5세가 레판토 해전에서 터키군대를 물리친 승리에 감사하기 위해 이 성모축일을 제정했다고 하는데요. 성모님의 중재의 힘을 우리가 믿듯이 그야말로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하시면서 청원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이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어떤 자매님과 면담을 하였는데요. 대화를 나누던 중 그분은 ‘나는 많은 부분을 받았다.’ 고 실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을 보니까 그분의 모습이 그다지 주님과 친한 관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주님에게서 선물은 받았지만 주님과 친하지는 않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어린이로 비유하자면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기를 원해서 기도를 하지만 정작 선물을 받고나면 선물에 집착해서 그 선물포장을 뜯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산타클로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하느님의 선물을 받고도 그저 자신의 욕구만 충족된 신앙이라 하겠는데요.
예전 우리의 할머니들이 비록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미사 때 뭔 소리를 하는 지 못 알아들으셔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하느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 지 아는 지혜는 있으셨는데요. 이제 빌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빌어야 할 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