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 주간 화요일. 욥기 3,1-23; 루카 9,51-56
살다보면 제일 싫어하는 일중에 하나면서도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일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화가 미치게 되면, 폭발하여 남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지를 봐야만 참으로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물론 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만 그것에 무작정 휘둘려질 때 문제는 생기게 마련인데요.
오늘 화가 나서 억울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제 독서에 이은 욥이 그렇구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욥은 얼마나 힘든 지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하면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야고보과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을 맞아주지 않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말하는데요. 이렇듯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람의 본 모습은 나오게 마련입니다. 평상시 아무 문제 없을 때는 누구나 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지 아닌 지 알게 되는데요. 히브리서 11장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진정 나무를 아는 사람은 가지를 가꾸는 일보다는 우선 뿌리를 돌보게 마련입니다. 마치 루가 복음 6장에 나오듯이 “좋은 열매 맺는데 신경 쓰기보다 좋은 나무가 되려고 애쓴다.”처럼 말입니다. 겉으로만 보여지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진정 가지고 있는 본 모습을 잘 다져나갈 때 지금의 원래 나의 허약한 모습에 대하여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데요.
물론 예수님도 분노 하실 때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부리셨지, 감정의 부림을 받지는 않으셨는데요. 그럼 나는 어떻게 화를 내고 있습니까? 화를 내는 정확한 이유는 알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저 그 감정에 휘둘리고만 있는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