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화요일. 갈라디아 5,1-6;루카 11,37-41
자! 이제부터 이런 제시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유입니다. 강론도 없습니다. 이 성당을 나가는 것 말고 맘대로 이 미사시간에 뭐든지 하십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으십니까? 아니면 ‘이제부터 뭘 하지?’ 하고 고민에 빠지실 겁니까? 아니면 할 게 없으니 그냥 묵주부터 꺼내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분명 당신은 자유를 주시고 선포하셨지만, 우리는 그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할까? 슬며시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자유를 원하고 바랬지만, 뭔가 또 나를 잡아주는 그 무언가를 바라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런 모습을 바로 복음에 나온 율법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을 공경하고자 도움이 되기 위해 생겨난 것인데.. 이제 그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유로움을 주셨지만, 그 자유로움을 못 누려봤기 때문에 “자 이제부터 자유시간이다.” 했지만 놀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그 자유시간은 그저 게임하라고, 다른 취미활동을 하라고 준 자유시간이 아니지요. 그야말로 메이지 않는, 그것에 구속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는 참된 자유인데, 우린 그것을 바라면서도, 정작 만났지만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데요.
여러분은 왜 신앙을 가지고 계십니까? 천당 가려고요? 사람 되려고요? 깨끗해지려고요? 그런 답은 아직 멀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조차 없어져야, 그런 것에 메이지 않는 그 자체마저도 없어져야, 비로소 자유로운 신앙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몸에 모든 힘을 빼고 물에 담그면 자연히 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조건 구명조끼부터 챙겨 입으려는 모습은 자유로운 상태라 할 수 없는데요. 과연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또 무언가에 매달려야만 된다고 여기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