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2010. 10. 22. 오후 10:21:47

글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야 2,1-5;로마서 10,9-18;마태오 28,16-20

찬미 예수님, 교형자매 여러분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전교주일이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선교, 전교라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하철이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수님을 믿으라’ 는 가두 선교를 우린 쉽게 폄하하는 시각을 가집니다만, 그들이 행하고 있는 용기만큼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나는 비록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못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중에서는 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텐데요..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취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미사’ 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계십니까? 그 뜻은 그저 예배나 예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말의 뜻은 ‘파견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여기 모여 있는 우리가 전례 예식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충만해져서 이제 세상이 나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미사 마지막 인사 때 이런 경문을 듣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해놓고 복음을 전하러 가기보다는 어딜 갑니까? 자기 할 일을 하러 집으로 가거나, 볼 일 보러 떠나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파견을 의미한 미사가 그저 한 시간 정도의 예식 행위로 머물고 마는 현장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부모님의 유언을 따라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늘 복음의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지막으로 남기신 당신의 목소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길 바라십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남에게 복음적인 이야기를 해주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혹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내가 그다지 복음의 말씀대로 충실히 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요..

많은 쉬는 교우들에게 ‘왜 냉담의 길로 들어섰는가?’ 물어보면 이런 답이 나오는데 놀라움을 느낍니다. ‘기존 교우분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을 하였다.’ 라고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모든 이에게 다가가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통하지 않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다 옳았습니다만 행실은 그러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인데요. 혹시 우리도 그런 모습 때문에 도중에 쉬는 신자들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이 먼저 변화될 때 남도 그것을 느끼고 달라집니다. 내가 믿고 있는 이 신앙에 대해 기쁨과 힘을 느끼고 산다면 이는 자연스레 풍겨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내가 먼저 변화되면 신앙이 부족한 이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1독서의 말씀대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서로를 향해 무기를 품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이제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 됩니다. 서로가 가졌던 무기가 땅을 경작하는 농기구인 보습과 낫이 되어 세상을 위하는 도구로 바뀌게 됩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고요. 우리는 이미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뭐가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이 더 바르고 옳은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들음을 실현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전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분의 삶으로 충만되어 있을 때 그 확신어린 얼굴이 궁금하여 다른 사람이 자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이, 바로 전교 아니겠습니까? 그저 몇 마디의 말보다 내가 기쁨으로 살고 있는가? 당신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는가? 그걸 바라본다면 나는 이미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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