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수요일.에페소 6,1-9; 루카 13,22-30
가끔씩 교우분들을 만나서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십니까?” 하고 여쭈어보면 부끄러워 하시는 것을 봅니다. 매일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우리이지만, 실상 느껴지는 게 별로 없으셔서인지, 매일 시간을 못 내신다는 것이 어려우셔서 그런 지, 대부분 분들이 묵주기도나 기도문을 외우는 염경기도에서 머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벌써 세례 받은 지도 꽤 되었는데, 같은 기도에서만 머물게 되면 분명 예전 같은 뜨거운 감동은 느껴지지 않을텐데요.
등산을 하다보면 여러 코스가 있음을 압니다. 여러 산행 코스를 통하여 진정한 산의 모습을 깨닫게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의 코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염경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 등 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기도가 내가 자리에 앉아서, 내가 시간을 내어 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은 그분이 이끌어주셔야 가능하지요. 그래서 기도 전에는 자리에 앉아 이런 기도를 하라고 권장합니다. “성령이시여 저를 이끌어주소서.” 라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하느님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밝히며, 그분에 대한 의존성을 분명히 하라 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못한다는 기도, 자신없어 하는 기도가 되는 이유는 그 기도를 ‘나 혼자 해내려고 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당신을 초대하고, 당신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느낄 때,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세입니다. 그 문을 통해 우린 겸손을 배우고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세의 시작을 통해, 지금은 꼴찌처럼 느끼지만, 나중에는 첫째가 되는 것이 무엇임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남과 다른 삶이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도의 시작은 내가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의지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의지는 나약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가 주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행복임을 깨닫는 시간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