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토요일. 필리피 1,18-26; 루카 14,1,7-11
아는 사람끼리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선생님이나, 회사 간부, 또는 본당 신부님이라도 계신다면 그야말로 등에는 땀이 삐질거리며 순간 자리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거기서 멀리 앉으려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복음의 바리사이들과는 반대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멀리만 앉고 싶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저 자리는 얼마 안 있어 내 것이어야 한다’ 는 욕구 또한 샘솟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바리사이의 모습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뭔가 있다는 사람들은 정말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윗자리를 찾아다닙니다. 그러기에 우린 오해를 잘합니다. 권위가 있고 학식이 있으면 당연히 높은 인격의 소유자일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머리를 숙이는데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예나 학문을 배우고 싶다면 그 방면의 권위자가 쓴 학설이나 업적은 본받되 그 사람을 직접 찾지는 말라’고 말입니다. 지위나 권세는 머리가 영특하고 세상과 시기를 잘 만나면, 누구나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누군가가 이런 소리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니가 유명작가가 된 것이 니가 잘나서가 아냐.. 세상을 잘 만난 탓이지, 시류와 세상이 니 글을 읽히기 만든 것 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요. 실로 그런 것 같아 보입니다. 그토록 재미있게 보았다던 10~20년 전의 작품들을 다시 보노라면 예전의 뜨거웠던 감동을 못 느끼는 것 우린 보잖습니까? 지위나 권세는 그렇게 얻을 수 있지만 인격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격이란 그 나름의 일을 해 나가는 와중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이나 행동 여하에 달려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사람, 대단하다는 사람의 측근들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인데요.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라는 말을 들으며 참된 삶의 자세를 바라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