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목요일. 묵시록 5,1-10; 루카 19,41-44
우리나라는 참으로 시험을 쳐야만 하는 시험공화국입니다. 얼마 전 수능이 있었고 각종 자격증 시험과 여러 고시를 위해 많은 이들이 매달립니다. 분명 이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총동원하여 아는 것을 열심히 썼을 겁니다. 그렇다면 ‘안다’는 말은 과연 무슨 말일까요? 단지 두뇌로 무엇을 분별하고 인식하는 수준의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런 ‘안다’는 말은 머리로만 인식하려 들기에 오히려 삶의 덫이 되고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우린 기억합니다. “너희가 차라리 눈 먼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
며칠 전부터 미사 독서로 묵시록을 읽고 있습니다. 묵시록 참 어렵습니다. 많은 비유와 상징이 숨어있으니까요. 오늘 그중에는 ‘봉인’ 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을 사람이 나온다.” 그런데 이 봉인이라는 것이 뜯기 전에는 그 안에 뭐가 있는 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씩 뜯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데요. 이렇듯 하느님의 계시는 지금도 천천히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 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우리 눈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았기에 이 신앙은 계속성을 지닙니다. 그분은 영원히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시는 그렇게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이어집니다. 그렇게 이어지기에, 어느 세대의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죽고 사그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계시는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렐루야에서는 이런 노래가 나옵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치 날 선 칼날처럼 자기를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듬는 와중에서 당신의 참뜻을 헤아리면서 그저 잘난 지식 수준에서 벗어나야만,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려고 그동안 가진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겼다는 바오로의 말처럼, 계속 신비롭게 무언가를 주시려는 당신의 모습을 헤아리는 내가 되기 위해선 앞으로 굽혀진 무릎의 생김새처럼, 그렇게 당신께 꿇어 엎드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