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 수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묵시록 4,1-11;루카 19.11-28
새로운 사람이 오게되면 기존의 있던 사람들은 그를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분위기, 말씨, 행동, 돈 씀씀이, 술버릇 등 많은 점을 관찰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아~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판단을 대략 내리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람을 이른바 띄엄띄엄 보지 않고 대략적이 아닌, 단순히 느낌으로만 판단하지 않으면서 정말 잘 살펴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렇게 오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자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왕권을 받으러 간 귀족 이야기를 꺼내시는데요. 그 비유에서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님께서는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사람을 자기식대로 오해하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그저 대충 자신이 느낀, 또는 남들에게서 들을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요. 실상 이러한 모습은 우리들에게서도 참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본당 10시 미사에 매번 나오시는 열심한 형제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낮에 그것도 젊은 남자가 미사에 나오니까 사람들이 직장이 없는 줄 알고 자기를 불쌍하게 보더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건데 말입니다. 논리철학-논고라는 것을 쓴 비엔나 태생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란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여러 말을 해대지만 실은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고 말입니다.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그녀는 헝가리 공주 태생이고 귀족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망으로 제3회에 가입해 전 재산을 나눠주며 기도와 구호활동을 펼칩니다. 그러나 출신성분이 좋았던 그녀이기에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뭔가를 바라고자, 얻고자 그러는 것이 아니냐며 말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주님에 대해서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할 수 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라도 명료하고 분명하게 주장해야 할 것이고요, 그저 느낌으로만 보면서 아직 잘 모르겠다면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