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4주간 토요일. 묵시록 22,1-7;루카 21, 34-36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 대입수능도 있었습니다만 그 날 본당에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참 대단하다는 단계를 넘어서서 경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자식들에게 교육을 왜 시키는 것일까요? 그저 좋은 대학 가라고요? 좋은 취직자리 갖게 하려고요? 그저 잘 되기 위해서요? 그런 수준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아이를 교육시키는 참된 이유는 연약한 아이가 세상에 홀로 잘 설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잘 설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도와준답시고 개입을 너무 많이 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학교 교수에게 학점 잘 달라고 한다거나, 직장인사에도 개입하는 모습 등을 보곤 하는데요. 이는 혼자 걸을 수 있는 아이를 자꾸 업어 키우려는 행위나 다름없는데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라고요. 우린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살펴야 이런 사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부활 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 뿐이다.” 라고 하시면서 정말 그분은 승천하여 떠나십니다. 오히려 더 같이 있어주셔야 되는 것이 아닌가? 야속할 정도로 말이지요. 하지만 우린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분의 떠나심이 우릴 똑바로 서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국 스승을 넘어서지 못하는 제자는 불행할 뿐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받되, 내 안에서 자기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계속 남의 것만을 모방하는 불쌍한 사람이 될 뿐인데요. 주님은 우리가 약하게 크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 앞에 잘 서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남의 강론이나, 강연을 듣는 데에만 만족하는 사람을 잘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을 아신 지 몇 십년 정도 되셨다면 배운 것을 토대로 잘 정리하여 점을 찍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