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간 목요일. 이사야서 26,1-6; 마태오 7,21.24-27
예전 찻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아직 파란불도 아닌데 뽀로록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빨간 불이라 차는 쌩쌩 다니고 아이는 중앙선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무서웠는지 다시 엄마를 외치며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예전에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우리 신앙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는가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 해보려고, 나 혼자 어떻게든 맘먹고 해보지만 어떤 벽에 부딪쳐서 어려움에 빠지면 주님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그 아이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당신을 반석처럼 탄탄하고 안전하게 여기는 자세는 1독서에도 동일하게 제시됩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진정하게 믿고 신뢰하는 자세란 과연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복음에 나온 대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겠지만 그 뜻을 실행한다는 것이 과연 쉽지 만은 않아 보입니다. 하느님을 오감으로 터득할 수 없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이시기에 보이는 사람 말도 잘 안 듣는데 쉽게 느껴지지 않는 분의 뜻을 찾기란 힘들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다행히도 그 방법을 알 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을 통해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소를 받았습니다. 그 성소란 그저 결혼성소, 수도성소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직업이 될 수 도 있고 그것이 하고 싶어하는 방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욕심을 걸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성소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2장 29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모두가 다 사도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가르치는 사람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기적을 행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나에게 주신 주님의 부르심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당신의 지체가 되어 그 뜻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