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2010. 12. 8. 오전 12: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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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어릴 때 학교 다닐 무렵, 우린 뭔가 바랬습니다. 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기를 말입니다. 그저 1번, 25번, 이렇게 번호가 불리기보다는 이름이 불리우길 말입니다. 그 이름이 불리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교우분들의 성함을 잘 모릅니다. 참 창피한 노릇입니다. 교우분들의 많은 숫자를 탓하며, 괜히 애꿎은 교적을 탓하면서 ‘왜 교적에는 사진이 안 들어가 있는거야?’ 하면서 말이지요.

아마도 우리의 이런 심정을 아시는 지 천사는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옵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성경 어느 구절에도 천사로부터 그런 인사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축복의 인사는 여타 다른 부르심과 차이가 납니다. 1독서에 아담을 부르며 “너 어디 있느냐?” 라고 하신 경우나 2독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처럼 부르긴 하지만 성모님의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그분의 원죄없는 잉태는, 하느님의 아들이 육화될 수 있었던 자격조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죄 없이 태어난 예수님이 죄 있는 성모님에게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정말 은총을 가득히 받은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성모님은 그 은총을 받았음에도 이를 잃지 않고 잘 보존하셨습니다. 그 보존은 그분의 동정, 순종, 겸손, 용기, 침묵 등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선택을 보면서 하느님의 원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살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실 수 있고, 원하시고 따라서 하신다’ 는 공식을 말입니다.

판공성사 기간을 맞이하며 우리는 세례를 통해 원죄를 씻었지만 여전히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우린 이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역할을 이행하면서 그 부르심이 완전해졌듯이, 우리도 우리의 주어진 길을 가면서 완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0년 12월 8일 오후 1:11

    아멘. 주님께서 오늘도 제 이름을 여러차례 부르고 계시겠죠! 프란치스카야 옆길로 새지 말고 내게로 잘 걸어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