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토요일. 집회서 48,1-11;마태오 17,10-13
벌써 내일이면 대림 3주차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좀 있으면 오신다는 예수님을 잘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까? 솔직하게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대림초를 키면서 분주하게 오실 주님을 맞이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보통 사람들의 내면 안에는 실제로 주님이 오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도 죽였고, 기다렸다는 주님을 만났어도 십자가에 처형시킬만큼 함부로 대했을까요? 참으로 우리 안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음을 시인할 때가 왔습니다. 그 불편한 진실이란... 주님께 기도하며 가까이 모셔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은 오시지 않길 바라는 나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기 앞서 ‘과연 내 인생에 예수님이라는 분이 필요한가?’ 하는 자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해답을 찾아가는 신앙입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나만 잘 모르겠다고 하여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 그런 척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오실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한데요.
우린 성경에 나오는 시메온 노인을 압니다. 그가 살아온 생애 동안 뭘 했습니까?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그저 예언만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언제 오신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만날 수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요즘 시각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무작정 시간만 낭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처럼 보이는 시간이 오히려 그를 제대로 만들어준 밑거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빨리 해결하려 하고, 자기 입맛에만 맞추고 싶은 인스턴트 시대에 ‘나는 과연 주님을 모시려는 마음이 제대로 있는가?’ 하는... 불편한 질문을 이젠 만나야만 합니다. 이 대답을 선뜻 솔직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정작 그분을 만나더라도 또 그분을 못 박는 짓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불편하니까요. 우린 어떻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