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금요일. 창세기 49,1-10; 마태오 1,1-17
보통 신앙인들이라면 나 자신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의 마음이 그렇게 올곧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들여다 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나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마치 주님의 뜻과 같다고 여기면서 억지를 부리며 바란다거나, 내가 바라는 사항을 주님의 뜻에 얹으면서 내 뜻도 이뤄지고 당신의 것도 이뤄지길 바라는 그런 모습을 보곤 하는데요. 이것은 그야말로 순수한 의도가 아니지요. 그러나 주님의 의도는 그야말로 우리의 뜻을 넘어서는 차원의 것임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간혹 성경을 읽다보면 섬뜩섬뜩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왜냐하면 당신이 예언한 것들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뤄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에제키엘 37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이 한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주님이 하는 말이다.'" 라고요.
오늘 그렇게 이루고야마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 맨 처음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서 주님의 구원사업은 한번도 쉬지 않았구나, 그냥 더디 오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여기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무위 사상에도 보면 ‘도는 언제나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는 말처럼 그렇게 하느님의 일은 쉬이 없이 오심을 보곤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린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을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의 안간힘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수난의 길에 접어드실 때 3번이나 예고를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어떻게든 막아본다고 반대를 불사하였고, 3번이나 모른다고 잡아떼기도 하였으며 도망간답시고 다락방에도 숨어들었지만 그럼에도 이루어지는 신비는 그저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만은 아닐 것입니다.
벌써 내가 살아온 인생을 다시금 회상해 보면 내 안에서 벌어진 수 많은 일들이 항상 내 계획대로만 움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우연하게 벌어졌던 일들이 실은 나와 관계된 많은 이들이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일이었음을 다시금 떠올려 보신다면 그렇게 뜻은 이뤄지는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