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간 수요일

2010. 12. 22. 오전 12: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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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4주간 수요일. 사무엘 상 1,24-28; 루카 1,46-56

예전 어떤 젊은 부부와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부인의 노력으로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는데요. 그런 모습이 참으로 기특해보여서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그럼 아이들도 세례를 시켰구요?” 하고 물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아이의 신앙만큼은 자유스럽게 놔두기로 결정했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은 말합니다. ‘신앙은 자유’다 라고요. 그런데 과연 이 말을 누가 먼저 사용했겠습니까? 사실 이 말의 어원은 헌법 20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를 믿을 자유의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간 의아해졌습니다. 아이의 이유식을 고르는 문제부터 진로 결정, 게다가 직업에 이르기까지 부모가 다 관여를 하면서 신앙만큼은 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참 소중하다면 당연히 이야기 해주고 교육시켜서 잘 가게끔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바른 도리 아니겠습니까?

오늘 두 어머니가 나옵니다. 사무엘을 바친 한나가 이야기 합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성모님도 그 유명한 마니피캇을 통해 기도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의 인물들은 자기 자식을 그토록 바치고 싶어했을까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왜 남들이 잘 안 가는 특이한 삶을 살길 원했을까요? 우린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청을 들어주셨음을 감사하는 표현으로 자기에게 제일 중요한 자녀를 바치고 있음을 말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자기의 삶이 구원되었다는 그 확신이, 아까운 것을 더 이상 아깝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자녀의 참된 행복을 원합니다. 그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저 남들처럼 비슷하고 똑같은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닐겁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게 만들면서 최고의 삶이되길 바라는 이들 부모의 마음을... 우리도 헤아려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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