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1서 1,1-4; 요한 20,2-8
얼마 전에 사진을 보다가 프랑스에 있는 사르트르 주교좌 성당의 정문에 부조물을 보았습니다. 우리 성당에도 성상,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지만 그런 부조물이나 유리화는 당시 문맹이었던 신자들을 위한 배려였는데요. 그런데 그 성당정문에는 신약성경의 4복음의 상징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각 복음마다 첫 장면을 가지고 상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예전 책들은 제목이 따로 없기에 첫 장의 모습을 가지고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마태오복음의 상징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다윗가문의 사람임을 드러내기에 그렇고요. 마르코 복음은 사자를 상징합니다. 첫 장부터 광야의 요한을 제시하기에 마치 포효하는 사자를 나타내고요. 루가복음은 황소를 상징합니다. 루가의 첫 장면이 즈가리야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소개하는데 제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대표적인 동물이 소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복음사가인 요한복음의 상징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한의 서론이 로고스(말씀)에 대한 심원한 진리를 증언하기 때문에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에 비유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당시 1세기의 상황이 여러 이단들이 출몰하던 때인지라 요한성인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각시키며 차원 높은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성인 자신도 우리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요한의 엄마가 치맛바람을 날리며 주님의 오른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한 것이나, 주님이 사마리아 지방을 갈 때 환대하지 않자 화를 내며 “저희가 불을 내려보내 저들을 살라버릴까요?” 하는 것처럼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끝없는 사랑을 베푸셔서 다볼산의 변모를 보여주셨고 성모님을 맡기기도 하셨으며 오늘처럼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주님을 보고픈 마음을 가졌어도 베드로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입니다. 그런 요한이 체험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였습니다. 말로만 끝나는 사랑이 아닌 체험하는 사랑을 알렸던 그의 모습을 보며 요한 1서 4장 16절의 말씀을 드리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