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금요일.히브리서 4,1-5.11;마르코 2,1-12
요즘의 세태를 가만히 보면 불교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서점을 가더라도 깨달음, 명상에 대한 서적이 예전보다 더 많이 나오고 있고요. 우리로 따지자면 피정이라 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에 대한 광고나 또 절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이제는 밖에서도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일반인에게 다이어트의 효과로 비추어지는 장면들이 그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그럼 천주교는 무슨 매력이 있는가? 그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은 무엇일까? 찾아보게 만드는데요.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종교는 들음, 듣기로 시작됩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개개인의 깨달음을 강조하고요. 우린 이런 깨달음을 주님이 주신다는 점이 다른데요. 개개인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면서 홀로 뭔가를 한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혼자서 뭔가를 해서 깨닫는다는 것은 가만히 보면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개인의 지능, 능력, 이해력에 따라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낙오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깨달았다는 사람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승복하고 계속 들을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세상에 주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하면서 병자를 고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듣고 보는 내가 뛰어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건 간에 당신으로 인해 구원받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겠다는 주님의 참 구원의 정신을 볼 수 있는데요. 게다가 중풍병자를 낫게 하겠다고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들것에 환자를 내려 보내는 오늘 복음을 보더라도 병자의 믿음만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낫게 해달라는 옆 사람들의 노력에 당신도 감동하시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이젠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교가 모두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 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에 대해 절로 감사하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