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공현 대축일

2011. 1. 1. 오후 2: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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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야서 60,1-6; 에페소서 3,2.3ㄴ-5-6; 마태오 2,1-12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성탄을 맞이하면서 또 연말 연시를 지내면서 우리가 꼭 하는,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선물을 고르고, 드리는 일입니다. 선물을 산다고 골라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거 참 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격은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할 지, 크기나 수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 지, 혹시 받는 분이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을 합니다. 그렇다고 대충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드린다고 꼭 좋지만도 않습니다. 효용 가치면에서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정성이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선물 고르기의 기준을 잡아본다면, 받을 분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물은 그분이 원하는 것, 그분에게 맞는 것을 골라야 하는 것이지 그저 내가 주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주님이 나셨지만,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먼저 알고서 찾아옵니다.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들의 구세주라는 사실이 확증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유대인들은 동방박사들을 따라 같이 주님을 경배하러 가지 않습니다. 헤로데의 말처럼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라면서 시키기만 합니다. 과연 왜 그랬을까요? 요한 복음 1장에는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고 말입니다. 진정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님이 막상 예언대로 오셨건만, 사람의 마음 안에는 당신의 오심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는 뼈 아픈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의 편안한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하느님은 그저 내 인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데 그치셔야지, 내 인생을 관여하는 것은 바라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런 날카로운 현실을 바라보며, 우린 그분을 어떻게 만나야 하겠습니까?

 

우선 이런 우리 자신의 해결점을 찾기에 앞서 주님께 신앙도 없고 큰 상관관계가 없었던,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했나 보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에 보면 그들이 한 행동이 나옵니다.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어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이들도 시메온과 안나처럼,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주님이지만 그 안에서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모습은 빵의 모습이지만, 그 안의 실체는 주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감사하게 영성체를 할 수 있듯이, 주님의 모습이 성인이든, 아기이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 앞에 약속된 그분이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땅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이 행동은 임금 앞에서나 하는 최대의 존경을 표현하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버리겠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을 뵈오면서 그냥 빈 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지상에서의 임금이심을 드러내는 황금, 신과 통교하는 진정한 제사장의 모습이라는 유향,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드립니다. 이방인인데도 그들은 아기 예수님의 미래까지도 보는 능력이 있음을 보면서, 우린 무엇을 드리는 지, 그분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지 바라보게 되는데요. 과연 안 믿는 그들보다 더 정성되게 그분을 모시려 하고 있는 지를 말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주님이 내 인생에 진정 소중한 분이라면 나는 당연히 내 삶 안에서 준비한 정성된 선물을 자꾸 드리고 싶어할 것입니다.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요, 마음이 담겨진 보여지는 결정체이니까 말입니다. 우린 그분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냥 대충 때우기에 바쁜 것은 아닙니까? 나는 그분을 과연 어느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시고 있는 그 정도가 주님을 향한 마음의 크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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