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공현 후 금요일

2011. 1. 7. 오전 12:17:40

글자

주님 공현 후 금요일. 요한 1서 5,5-13; 루카 5,12-16

여러분께서 웃으실 지 모르지만 제가 올해 드디어 아홉수에 다다랐습니다. 서른 즈음에는 잘 몰랐지만 마흔 즈음에 다다르니 이젠 어른으로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어른이 되면 더 대범해지고 마음이 넓어져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과 생각이 협소해지고 굳어져 있는 어른들을 볼 때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장 사상에도 제일의 도(道)를 ‘물’이라 일컫습니다. 물은 항상 언제나 부드럽고 머물지 않게 흐르며 흘러갈수록 커져있는 갖추며 모두를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이 물보다 더 큰 것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복음에도 나병 환자들이 치유를 받습니다만 구약성경인 열왕기 하권 5장에 보면 나아만이라는 장수가 치유를 받는데요.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가 예언자 엘리사의 도움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하지만 엘리사가 한 일은 그저 이것 하나였습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당연히 화가 날 수 밖에 없었지요. 뭔가 만져주면서 고쳐주려니 했지만 그저 강에 들어가라니 말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화난 그를 달래며, 만약 어려운 것을 시켰다면 그것도 할 텐데, 그저 몸만 씻으라는 데 못할 것이 뭐가 있냐는 말을 하자, 그는 시킨데로 하고 건강을 되찾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물을 본받으라는 노장 사상을 대단히 크게 여깁니다만 실은 나아만이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요르단 강의 수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따랐던 믿음이었다 라는 사실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병환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병 많고 다른 이에게 따돌림이나 받는 이들이 오히려 큰 믿음을 가지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몇 십년을 교회에 다녔지만 아직도 하느님이 계신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잘 늙어야 하듯, 신앙도 잘 가꾸어 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언제 굳어져 버린 자신을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1년 1월 10일 오후 1:00

    심님 말씀처럼, 이제는 잘 자라는 것, 잘 사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잘 늙어가는 것, 잘 죽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