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4 주일미사. 스바니야 2,3-13;1고린토 1,26-31;마태오 5,1-12ㄴ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일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제가 초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다니던 성당의 어린이 미사는 주일 오전 9시에 거행되었는데요.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방송국에서는 꼭 만화영화를 아침부터 틀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를 사로잡는 만화가 있었으니, 그 만화는 바로 은하철도 999였습니다. 옴니버스 방식의 이 장편 만화는 매주 꼭 2편씩 방송되었는데 문제는 성당과 집 사이가 20분 거리라서 8시 35분쯤 되면 이미 한 발은 마루에 걸쳐놓고, 나머지 한 발은 신발을 신은 상태로 TV를 보고 있다가 40분이 되면 ‘에잇~’ 하며 꼭 뒤편은 보지 못한 채 집을 뛰어 나와야 했었습니다. 그 만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철이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간다는 설정이 우리네 신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하나는 부모도 없는 가난한 철이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요즘 전세대란에다가 물가비상인 설날을 맞이하게 된 요즘입니다. 미사 때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도 미사만 끝나면 바로 한숨을 내뿜으며 살림살이 걱정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인데 ‘아니~ 가난한 사람이 뭐가 행복하다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참말로 세상물정 모르시네요.’ 라며 한탄의 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우린 현실을 살아가며 진정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남이 잘 사는 모습만 보면서 부러워 할 줄은 알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제대로 볼 생각은 잘 안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발견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데요. 내가 가진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가져도 불평불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부족하다는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데요. 오늘 2독서 처음 부분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기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라고요. 이렇게 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왜 선택하셨을까요? 잘난 사람도 많은데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느낀 체험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사가 30분 남았는데도 강론을 전혀 쓰지 못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소용없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강론없이 해야겠구나’ 하며 툭 저를 내려놨는데 갑자기 마음이 열리면서 갑자기 신명이 생기며 손가락 속도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강론원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나오니 말입니다. 다행히 그 미사는 별 탈 없이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 내가 잘나서 똑똑해서 그럴 수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다른 방향에서 이런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신자들을 생각해서 내가 준거야’.. 저는 순간 당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당신께서 강론을 주시며 사제의 위신을 무너뜨리지 않으시는 동시에 신자들을 참된 길로 인도하셨으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방배동 본당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린 자신이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난할 때 참된 것을 바라보게 해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만화의 주인공 철이는 자신의 현실을 비극적으로만 보지 않았기에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었고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은 어려운 수단의 현실을 껴안았기에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성 이레네오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내 모습을 내가 참답게 접함으로써 나에게 전해진다고요. 이제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자기를 넘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야말로 주님의 뜻을 여러분 안에서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시간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