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목요일

2011. 3. 5. 오전 10: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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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8주간 목요일 집회서 42,15-25;마르코 10,46-52

요즘 예비자들의 찰고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배웠던 것을 확인하는 이 시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대답을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익숙해 있던 이들이, 현상의 세계만 중시했던 이들이 초월적인 하느님을 인식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는데요. 사실 얼마나 의심이 많은 우리들입니까? 확신과 부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파스칼은 확신과 부정 사이에 의심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부정하기에 너무나 많은, 그러나 확신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증거물을 가지고 있다.” 고요. 그러나 과연 세상엔 하느님을 인식하기에 부족한 증거물 밖에 없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업적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이 모든 것이 살아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는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내가 창조한 것도 아닌데 참으로 경이로움을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워하며 탄성을 지릅니다. 그리고 뭔가 모를 충만함에 사로잡힙니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보통 적선해 달라는 소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그는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눈먼, 보이지 않는 그가 예수님의 무엇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예수님의 소문만 들었기에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홀로 이런 고민도 했을 것입니다. 과연 나를 낫게 해줄 수 있을까? 거절하면 어쩌나? 소문과 다르면 어쩌지? 하고요. 그러나 그는 자신을 던지는 투신(投身)의 모습이 있었기에 그런 외침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자신을 내맡김이요, 자신을 던지는 확신이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랬기에 눈을 뜬 다음,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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