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1. 2. 23. 오전 11: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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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집회서 4,11-19; 마르코 9,38-40

미국 갱 영화의 대명사인 ‘대부’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중 대부3편에 보면 대부인 알파치노가 나중에 교황님이 될 요한 바오로 1세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추기경님은 분수에 들어있는 작은 돌을 꺼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돌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돌은 몇 백년간 이 안에 있었지요. 그런데 물은 하나도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한번 깨볼까요?” 하면서 돌을 깨보이며 돌 안이 완전히 말라있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그동안 주님이라는 분의 분수 안에, 계속 잠겨 있었지만 그 돌처럼 하나도 스며들지 않은 모습 말입니다. 내 방식대로 사느라고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리라.” 우리의 삶은 어쩌면 보이지 않고 따로 날짜에 메이지 않은 훈련의 나날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기울이는 삶을 살면 당신은 그만큼 당신 자신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리라.”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내 방식대로 살면 그만큼 젖어들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드는데요.

오늘은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은 신앙은 믿음 뿐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올바른 행동으로 이해합니다. 즉 행업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덕을 쌓으려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를 돕는 은총이 필요하기 때문에 폴리카르포는 은총 안에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은총은 어쩌면 당신이 말씀하신 지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혜안에서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참된 이해의 사랑이 나올 수 있는데요. 제자들은 보고합니다.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보았는데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으려 했다.” 고요.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이들은 막혀있지 않은 이들입니다. 자신의 주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분수 안에 사는 여러분들! 진정 그분으로 말미암아 젖어드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선 나의 주관에 집착하기보다 모든 것을 잘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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