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금요일.집회서 6,5-17;마르코 10,1-12
우리 본당은 여느 예식장 수준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운 규모와 큰 주차장을 완비하고 있기에 더불어 거기 사는 저도 이번 달에만 벌써 4번의 주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얼굴 모르는 사이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시간을 내어 두 사람과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서는 꼭 던지는 질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여자보다 그 어떤 남자보다 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라고요. 여기에 언어 능력이 뛰어난 자매들은 조리있게 잘 말하지만 남자들은 피상적인 이유, 이쁘니까요, 제 말을 잘 들어줘서요. 등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날을 잡아두고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했기에 질문을 던진건데, 오히려 사이게 금 가게 만든 게 아닌가 하고 오히려 제가 긴장을 하는데요. 사실 이 질문을 했을 때 제가 듣고 싶었던 답은 이거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주변의 이유만을 들고 있었는데요.
오늘 집회서에는 친구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꼭 나이가 동갑인 사람뿐 아니라 같이 사는 부부도 친구가 될 수 있지요. 우선 서로를 의지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세상은 서로의 관계를 계산으로 재고, 득실로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자인 우리도 거기에 물들어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본 모습이 나옵니다. 내가 가진 사랑이 순수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갑자기 상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걸 대처해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인지 보게 해주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친구가 되어주고 어떻게 껴안아주고 있습니까? 현실의 나를 바라보는데서 부터 참다운 사랑은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