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후 목요일

2011. 3. 10. 오후 6: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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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예전의 어떤 분께 조심스레 믿음을 가지길 바라는 말을 하자 그분은 이런 답변을 해왔습니다. ‘저는요. 저를 믿습니다.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저를 믿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저를 배반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나중에 이분도 교우가 되셨지만 방금의 이 말은 얼핏 듣기에는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보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안에 갇혀 있음을요. 우리의 신앙은 자유로움을 찾는 것인데요.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이승에 살고 있는 한 늘 자신을 믿지 말고 자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아니? 자기를 경계하라니요? 하지만 확실히 이런 경향이 우리 안에 있음을 살핍니다. 내가 나 자신을 제일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방이 나의 현 상태를 제일 잘 들여다 볼 수 있음을요. 내 안에 욕심이 생기면, 남들은 그런 나를 잘 볼 수 있지만 욕심에 차 있는 나 자신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내고 있음을요. 대 데레사의 말은 진정 애착을 끊을 때,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인데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고요. 그냥 고통을 껴안기만 해서는 안된답니다. 그저 지고 가서도 안된답니다. 자기를 버리랍니다. 그럼 어떻게 버려야 하겠습니까? 예전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이라는 낙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다음 세대의 후손들이 들어갑니다. 왜일까요? 막 이집트를 탈출한 이들은 엄청난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계속 자기식대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광야에 들어가자 계속 불평하며 예전의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그나마 잘 먹었고 있었던 그 시절이 지금의 광야보다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그들의 몸은 자유였지만 근성은 여전히 노예였기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저 예전의 조금 편했던 것만을 찾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렇다고 억지로 자기를 버리려 마십시오. 오히려 주님이 어떻게 십자가를 지면서 부활에 이르렀는가를 살펴보십시오. 나도 그리 살고 싶다는 갈증이 참 변화된 삶으로 이끌어 줄 테니까요.

댓글 1

  • 2011년 3월 11일 오후 1:21

    주님께서 제가 저 자신을 버릴 수 있게 이끌어주실 수는 있어도 제 자신을 버리는 것은 결국 제 자유의지이지요..그래서 더욱 제 모든 것을 비우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 나약함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