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 주일 미사.사무엘 상 16,1-13; 에페소 5,8-14; 요한 9,1-41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중에도 눈이 피곤할 정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 동안 문제가 없었는가 알아본다고 TV를 켭니다. 신문을 읽습니다. 그리고 출근한다고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무료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휴대폰을 꺼내서 오락을 하거나 방송을 봅니다. 그리고 업무가 시작되면 온갖 서류를 쳐다보고 컴퓨터 화면을 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렇게 그저 다가오는 정보에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나를 맡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보면서 참다운 깨달음을 얻으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눈먼 청년을 고치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실로암을 더듬거리며 찾아가 눈을 뜹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을 뜬 그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당시 그런 장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풍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롭게 눈을 뜨고 새 삶을 시작하려는 그에게 바리사이들은 어떻게 눈을 떴냐며 따집니다. 그리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의 행위라는 사실에 어찌 죄인이 기적을 보일 수 있냐며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눈 뜬 청년의 부모마저도 자신들이 그 일에 휘말리게 될까 두려워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 할 것입니다.” 라고 도피합니다.
이제 눈 뜬 청년은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습니다. 눈을 뜬 것은 사실이고 이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눈을 뜬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은 매몰차게 조여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바른 소리라도 할라치면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고 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진정 육체적으로 눈을 떴다고 자신하며 말하지만 진정으로 바른 것 옳은 것도 구분 못하며 있는데요.
오늘 1독서에서 사무엘은 임금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떠납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눈에 처음 들어온 이는 아무래도 겉모습이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는 말씀처럼 사무엘은 처음 눈에 좋은 것이 보여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기에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마음을 보신 하느님이시기에 그는 나중에 위대한 임금이 됩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눈 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는 말씀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잘 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상대방의 의향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일이 얼마나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까? 2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고집, 아집, 욕심을 버리고 옳은 것을 가려낼 줄 아는 시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허황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멀리하는 습관을 키우면서 자신을 추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참다운 것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절제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떴다면 다가오는 어려움을 당신께 맡기며 “주님 저는 믿습니다.” 라고 고백한 복음의 청년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물론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여러 체험으로 겨우 뜬 눈을 내 손으로 다시 감아 버린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일 아니겠습니까? 신앙인의 시각으로 참되게 바라보면서 깨어있을 때, 당신은 늘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