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 수요일

2011. 3. 23. 오전 9:31:17

글자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미아 18,18-20;마태오20,17-28

예전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본 것을 말씀드려봅니다. 나중에 명필가라 칭송받은 최흥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 글씨를 아주 잘 쓰고 글을 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과거시험을 보러 나갑니다. 쭉 답안지를 써 가는 데 갑자기 한 글자가 중국의 명필가 왕희지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글자를 계속 골똘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쓴 것이지만 너무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그는 이 답안지를 차마 제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기어이 답안지를 그냥 품에 넣고 나왔다는 이야기인데요. 여러분이 듣기에 어떻게 보면 어이없을 것입니다. ‘뭐야 저 사람?’ 최흥효는 글을 쓰는 자체가 너무 좋았던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과거시험을 보는데 자기 글자가 왕희지체와 비슷하다고 품에 넣고 돌아왔다는 것은 이미 출세 따위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나중에 명필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적당히 하지 않고, 자기를 온전히 잊을 수 있었기에 명필가가 된 것인데요. 그럼 여러분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혹시 무언가를 바라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오늘은 그 유명한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말로는 주님, 주님 하면서 실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이사야서 29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 배운 계명들 뿐이니..” 라고요.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누가 가르쳐 준 고백만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했던 말이 절실해도 실은 자신과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그저 남이 가르쳐준 것 이상의 것이 나와야, 주님 자체가 좋아야 참다운 주님과의 관계가 이어집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어머니의 이 청이 제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나와 있지만 실로 주님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요.

 회남자에 ‘활쏘는 자는 비단짜는 자와 다투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영역에 있는 이들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결국 비슷한 것들끼리 난리를 벌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자유로운데 말이지요. 나는 주님을 어떤 자세로 모시며 따르려는 지, 잘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