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일 금요일
어제와 오늘 우리는 수난감실을 지키면서 복음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요한복음 17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모든 때는 바로 오늘의 사건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 내부에서 일고 있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되고 있는 이때에 예수님은 당신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빌지 않으십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빌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세상만의 구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만드신 우리를 위하여 빌고 계십니다. 당신 자신 내부의 두려움이 오는 그 순간에도 그렇게 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신의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어떠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매년 이맘 때 주님의 수난의 신비에 젖어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신을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임금님으로 모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관한 그 모든 일들을 나는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남들이 말하고, 전하고 있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체험하고 바라보는 주님 상에 대해 말입니다. 오늘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준 것이냐?”
여기 앉아계신 교우분들이 신앙을 가진 지도 참 오래되신 분들부터 얼마 전에 세례를 받으신 분 까지 많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되었건, 얼마 안 되었던 간에 그동안 주님을 어떤 분으로 모시고 있었나? 이제는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구원의 대가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향한 진정한 목마름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다 이루어졌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지켜보면서 우린 그동안 주님을 남이 말해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나? 아니면 내가 체험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나? 이제는 내 입으로 고백할 때입니다. ====잠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