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

2011. 5. 3. 오전 8: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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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축일. 고린토1서 15,1-8;요한 14,6-14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들은 성경을 읽습니다. 그럼 성경을 왜 읽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그저 책을 가슴에 안고 소중히 여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거기 적혀 있는데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럼 거기 적혀 있는데로 살려면 무엇이 수반되어야 하겠습니까? 거기 적혀 있는 내용을 틀림없는 것으로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입으로는 읽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가미합니다. ‘과연 그럴까? 그게 되겠어? 이렇게 세상 살다보면 나만 바보 되는데 뭘..’ 하면서요. 하지만 그러다보면 진정 될 것도 안 되는 것을 봅니다. 마치 선생님과 교과서를 믿지 못하는 학생이 성적이 안 좋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1독서에 이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상기시킨다는 말은 다시 말해 이미 우리가 들어왔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미 우린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항상 우린 아이들 마냥 보챕니다. 복음에 필립보가 말하지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그럼 우린 그동안 누구랑 지냈다는 말입니까? 대다수 교우분들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에 집착합니다. 내가 바라는 소원만을 바라는 신앙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과연 그동안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작은 무엇 하나라도 받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린 자꾸만 그분을 알기보다는, 그분이 주시는 선물에 매달립니다. 부모 자식사이가 그저 선물만을 주고받는 사이일 때, 지쳐갈 수 밖에 없습니다. 관계를 맺지 못하니 말입니다. 선물은 관계를 알게 해주는 증표이지, 사랑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랬던 필립보도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달라진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진정 참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우린 이미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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